2019.11.02 (토)

  • 구름조금동두천 4.7℃
  • 구름조금강릉 10.8℃
  • 맑음서울 8.8℃
  • 맑음대전 7.8℃
  • 박무대구 9.2℃
  • 맑음울산 11.5℃
  • 박무광주 10.2℃
  • 맑음부산 14.7℃
  • 구름조금고창 7.4℃
  • 맑음제주 16.1℃
  • 맑음강화 5.3℃
  • 맑음보은 4.5℃
  • 구름많음금산 3.6℃
  • 맑음강진군 9.1℃
  • 구름조금경주시 7.7℃
  • 맑음거제 12.7℃
기상청 제공

K-The One

한국비료와 이병철의 10년의 고난 (15)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우다

 

“나이 70이 넘어서는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지 않으려 했다.”

 

이병철의 말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말을 어겼다. 꼭 해야 할, 꼭 하고 싶은 사업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이었을까?

 

그 것을 알기 전에 이병철의 기업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이해해 보자.

 

“기업은 자선후생의 단체가 아니다.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이익으로 종업원에게 충분한 급료를 지불하고,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주주에게 배당하고 그리고 재투자를 한다. 기업이 이익을 얻는 방법에는 적부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이윤추구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기업이 적자를 내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악이라 할 것이다. 자본, 자재, 사람 등 사회의 귀중한 자원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기업부실화의 부담은 결국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또한 생산하는 재화가 소비재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불가결하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이다. 양질의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게 사회에 공급하느냐, 바로 이것이 기업 사명의 전부이고 그 존재가치이기도 하다.”

 

‘기업이 이익을 얻는 방법에는 적부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이윤추구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기업이 적자를 내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악이라 할 것이다.’

 

아무리 되새겨 봐도 정말 명쾌한 기업에 대한 정의다. 기업이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것이다. 시기와 방법에 있어 적합하냐는 것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손을 대면 반드시 이윤을 창출한다는 삼성의 대 원칙은 이렇게 이병철의 기업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병철은 항상 그런 기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이윤의 뿌리 역시 명확했다. ‘생산하는 재화가 소비재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불가결하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이다. 양질의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게 사회에 공급하느냐, 바로 이것이 기업 사명의 전부이고 그 존재가치이기도 하다.’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어찌 성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삼성 성공의 비기는 이렇게 단순 명확한 것이었다.

 

그럼 이병철이 하고자 했던 사업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전자산업, 아니 정확하게 반도체산업이었다.

 

사실 이병철은 1969년 전자산업에 진출한다. 반도체 산업은 이 때 그저 먼 훗날 한 번은 도전할 사업이라는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당장 가전제품을 만들어내는 삼성전자의 경영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말 그대로 삼성전자는 창립 9년만인 1978년 흑백TV 백만대를 생산해 일본의 마쓰시타 전기를 앞서 연간 생산량 세계 최고 기록을 수립했다. 1981년 5월 다시 연간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컬러TV에서 컴퓨터 등 삼성전기의 생산분야는 그렇게 조금씩 확대됐다.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반도체 생산을 하게 되는 것은 이병철이 73세가 되는 1982년이었다. 앞에서 밝혔듯 사람이 70세면 이제 ‘종심’의 덕으로 살아가는 나이다.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 했던 일을 마무리하는 시기다.

 

그러나 이병철은 반도체 개발의 결의를 다졌다. “이것은 꼭해야 한다. 나라의 100년을 좌우할 사업이다.”

 

그럼 이병철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1982년 미국을 찾게 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지만 노조가 득세하면서 노사갈등이 극에 달하고 표퓰리즘 정권 하에 사회 곳곳의 비효율성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가장 부유한 국민 2억 명이 있는 거대 시장이었지만, 그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조금씩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중공업의 기간산업을 억제하고 반도체 등 경박단소, 작고 가벼운 산업으로 국가 산업체질을 바꾸며 미국 시장을 비롯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이병철은 직접 미국을 찾아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일본 기업들을 보면서 아직 일본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는 고국 한국의 상황을 걱정했다. 특히 이병철을 감동시킨 것을 미국의 첨단 기업들이 태두로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성장이었다.

 

“내 나이 73세, 비록 인생의 만기이기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이병철은 반도체 개발의 결의를 다졌다.

 

삼성반도체 개발이 쉬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모두가 알 듯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됐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으로도 세계적인 회사지만 정작 막대한 수익을 내는 것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병철의 열정은 이렇게 인생의 만기에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 끝없이 고민한 것이 인간의 삶 그 자체였다. 이병철은 그의 반도체 개발의 성공을 본 뒤 1987년 11월 19일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인생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됐는데, 오직 죽음만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탓일까? 그는 정말 어찌 보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죽음 앞에 남겼다. ‘정말 신은 있는가?’, ‘부자는 정말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는가?’ 당대 한국 최고 부자의 유치한 질문들이라고 하기에 이병철의 물음은 너무나 맑고 순수하다.

 

이병철의 질문에 지금도 한국의 많은 철학자들이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아쉽게 모든 답이 이미 옛 성현들이 정리해놓은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찌감치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당대 가장 많은 독서량을 자랑했고 가장 많은 유명학자, 종교인들과 교류했던 이병철이 설마 그 정도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 그 정도를 생각하지 못해서 죽기 전에 질문을 던졌을까?

 

글쎄 필자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병철은 죽는 순간까지 그 답을 찾지 못해 질문을 남겼을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