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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꽃은 피고 진다.

덩샤오핑의 절정의 순간들

본래지지 않는 꽃은 없는 법이다. 항상 절정에 달했을 때 몰락은 시작된다. 덩샤오핑의 공산당 간부의 인생은 화려했다. 전쟁 중 혁혁한 공을 세웠고, 전후 공산 중국 건립 후 국가 재건에도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진정한 고난은 그 절정의 순간 시작됐다.

덩샤오핑은 항일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처음 팔로군 총정치부 부주임을 맡은 덩샤오핑은 후에 129사단 정치위원을 맡는다. 사단장은 류보청(劉佰承)과 함께 진익예노(晉翼豫魯) 일대 혁명 근거지를 만들었다.

덩샤오핑은 1945년 제 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에 당선된다.

해방전쟁 시기 역시 마찬가지다. 덩샤오핑은 중국인민해방군 진익예노 야전군 정치위원을 맡아 후아이하이(淮海)전쟁, 두장(渡江)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두 공당당 해방전쟁의 승기를 가져다준 전투들이었다.

이후 덩샤오핑은 난징 등 화동 지역과 중남부 지역을 해방했다. 이후 서남부 지역으로 진군한 덩샤오핑은 서남부 각지의 해방을 이끌어냈다.

중국 공산당 사료는 덩샤오핑의 군사재능에 대해 “덩샤오핑의 군대가 온다는 말을 들은 국민당 군대는 오금을 저렸다”고 적고 있다.

그 공로로 공산 중국이 성립하고 덩샤오핑은 중앙인민정부 위원, 중공중앙서남국 제일서기, 서남군정위원회 부주석, 서남군구정치위원이 된다.

1952년에는 베이징에 와 중앙인민정부 정무원(1954년 국무원으로 개청) 부총리를 맡는다. 1954년 다시 중공중앙비서장, 국방위원회 부주석을 맡는다.

1955년 공산당 제7기5중전회에서 정앙정치국위원에 뽑힌다. 1956년 공산당 8기1중전회를 통해 중앙정치국상무위원에 당선된다. 말 그대로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이 된 것이다.

덩샤오핑은 이렇게 중국 공산당 권력의 중앙에 다가갔다. 그러나 저 인생의 구석 한편에서 자신이 꿈도 꾸지 못한 고난이 싹트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