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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상

용서, 용容은 받아들여 함께 사는 것이요, 서恕는 내가 나를 위하듯 남을 대하는 것이다.

세상에 꼭 한 가지만 더 있어야 한다면?
많은 답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답은 ‘용서’容恕다. 
세상에 꼭 한 가지만 더 해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용서가 
더해지길 바란다.

© lmtrochezz, 출처 Unsplash

 

 

세상에 용서가 없었다면? 
참 상상하기 어렵지만, 세상은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찼을 것이다. 
용서, 
그것은 모든 사랑의 시작이요, 
교류의 완성이다.

 

 

사실 입으로는 쉬워도 
마음으로, 행동으로 하기 힘든 게 용서다. 
오죽했으면 “오늘의 용서 하나가 내일의 세상을 넓힌다"라고 했을까?
그리 어렵고 복잡한 게 용서다.

 

 

그런데 역시 한자의 세계에서는 
인간 세상 그 복잡한 것들이 단순 명쾌 해진다. 
용과 서,
둘 모두 여성,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이다.

 


먼저 용이다. 한자에서 용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보다 구체적이다. 
한자 용은 과거 동굴에 있던 창을 의미한다. 
동굴에 같이 산다는 의미다. 
즉 용은 남을 자신의 거처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남을 자신의 거처로 들이는 게 어찌 쉬울까? 
여성이어야, 사랑하는 이를 받아들이고, 군자쯤 돼야, 백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君子以容民蓄众
군자는 백성을 받아들여 군중을 만든다.
옛사람은 또 말했다.
女为悦者容

 


여성은 좋아하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
여기서 화장을 하다는 말 대신 받아들인다 하여도 잘못됐다 하기 어렵다. 
용은 자연히 얼굴, 화장하다, 꾸미다는 뜻을 지니게 됐다.

용서의 방점은 서에 있다. 
받아들이고 서를 한다는 게 용서의 본질이다. 
모든 게 서에 좌우되는 말이다. 
서란 과연 무엇인가?

 

 

서는 인仁이다. 인의 실천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세상에 평생 실천할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묻자, 
공자 답한다. “서恕다.” 그리고 부연을 한다.
己所不欲, 勿施于人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서 시키지 마라. 
이것이 바로 서다. 

 

 

혹자는 공자 사상의 정수가 바로 이 서에 있다고 한다.

참 어렵다. 역시 한자가 명쾌하다. 
서는 갑골자와 금문에는 나타나지 않고, 전서에 들어 자형이 나타난다. 
마음 위에 여성이 표시된 글이다. 
이어 바로 여성 옆에 입구 자가 있는 여 자가 등장한다. 
여성의 순종하는 마음을 뜻한다고 중국 학자들은 본다.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전서에 앞서 등장하는 자형에서는 용서의 서와 분노의 노가 한뜻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노는 무정한 주인의 사역에 반대하는 노비들의 마음까지 담았다고 한다.
사실 노비가 화가 나도 받아들여야지 별 방법이 있었을까?
훗날 용서의 서와 분노의 노는 완전히 그 뜻이 구분됐다.

중국 바이두의 서에 대한 설명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마음 심心 위에 같을 여如가 있다"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 뜻이 "내 마음같이"가 된다. 풀면, "너 마음의 너처럼 남을 대하라"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어딘가 공자의 서의 개념과 닿아 있다. 

맹자는 서를 인이라 했다. 혹자는 서가 바로 밝음이라고 했다.
이 밖에 중국에는 이 서와 관련한 많은 명언이 있다. 그중 가슴에 와닿는 게 하나 있다.
以己量人谓之恕
자신으로 남을 가름하는 게 소위 서다.
‘구자도설’에 나오는 말이다. 이제 용서를 좀 알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