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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he One]

1962년과 1963년 한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혁명이후 군사정권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곳곳에 새로운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이병철도 열심히 이렇게 새로운 생기를 찾은 대한민국을 위해 뛰었다. 가장 큰 공이 앞서 언급한 울산공업단지의 건설이었다. 큰 틀에서의 변화는 좋았지만, 세부 디테일을 자세히 살피면 사회가 그리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군인 출신들이 곳곳에서 활약하면서 정책과 정책이 충돌하고, 말도 안되는 정책이 추진됐다가 중단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병철의 기업 삼성그룹 역시 이런 사회의 혼란 속에 휘청거렸다. 삼성은 두 번의 혁명 속에 ‘부정축재 기업’으로 내몰리면서 엄청난 추징금을 내야 했던 처지였다. 추징금은 당장 삼성을 어쩌지는 못했지만, 삼성의 자금 사정을 압박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런 삼성을 괴롭히는 일이 1962년 6월 9일 발생한다. 이병철은 이날 송요찬(宋堯讚) 당시 내각 수반의 초청으로 요정(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는 전통한국식 식당) 대하(大河)에서 다른 한국의 주요 기업인들과 식사를 했다.

 

 

송 수반이 말했다. “오늘 8시 정부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경제인 모두가 놀라실겁니다. 좋아하실거예요. 하하”. 모두가 궁금하며 식사를 하던 중 드디어 송 수반이 이야기한 8시가 됐다. 요정의 아가씨들이 라디오를 들고 들어왔다. 라디오에서는 긴급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부는 이 시각부터 제2차 통화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통화 호칭을 환圜에서 원圓으로 바꾸고, 10대 1로 평가절하를 합니다.”

 

 

10대 1의 평가절하, 기존 돈 10원을 가져가면 신권 1원을 내준다는 의미다. 정부는 예금을 동결했고, 신화폐와 교환액도 1인당 하루 500원으로 제한했다. 정부의 의도는 지하자금을 묶고, 지상으로 끌어내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당일 이병철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뉴스를 듣고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돈은 돌아야 하는 데, 개혁으로 화폐의 유통이 제한되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화폐 유통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송 수반은 이병철을 비롯한 기업인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아니 왜 좋은 일에 얼굴을 붉히시냐?”고 물었다. 이병철이 아쉬운 듯 말했다. “착상은 기발하지만, 결과가 좋을 것같지 않다. 득보다 실이 크다”

 

 

다음날 이 말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병철을 찾았다. “경제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에 이 길밖에 없다고 해서 단행한 것입니다. 극비리에 진행했기 때문에 최고회의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새 지폐는 재무장관이 영국에서 인쇄를 했습니다.”

 

 

말을 들은 이병철은 가감없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혼란이 클 것입니다. 신화페를 교환하기 위해 수백만명이 은행 창구에 줄을 서야 합니다. 그 원성이 전부 정부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병철의 말은 옳았다. 몇 달이 지나 정부는 곧 예금 동결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한다. 예금동결 조치는 잠시 기사회생하던 한국 경제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가 바뀌어 1963년이 되면서 외화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정부는 원자재 수입할당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는 다시 삼성에게 엉뚱한 타격을 주게 된다. 당시 삼성의 주력 사업 가운데 하는 제당과 제분이었다. 이 글 초기에 소개했지만, 제일제당(현 CJ그룹의 전신)은 오늘날의 삼성그룹이 있게한 모태였다. 제당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시장에 설탕과 밀가루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시중에 생산자들의 가격을 조작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풍문이 떠돌았고, 일부 정치인들이 부화뇌동했다. 정치인들이 자꾸 말을 만들어내니 이를 언론이 받아서 대서특필하고, 다시 언론이 보도하는 행태가 이어졌다.

 

 

결국 정부의 전격적인 조사가 이뤄지는 사건이 되고 만다. 한국 경제사에 유명한 ‘삼분(三紛)파동’이다. 제당과 밀가루, 시멘트가 모두 가루여서 나온 명칭이다.

 

 

조사 결과, 삼분파동은 정치인 한 명이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것임이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 사이에는 당시 보도만 기억하고 삼성을 매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병철은 책에서 고백했다. “어쩌면 일하지 않는 이들이 일하는 이들을 욕하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