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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방탄소년단X이백<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한 방탄소년단이 
단독 쇼로 기획된 Mnet BTS countdown에서 초창기 앨범 수록곡인 'tomorrow'를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 노래는 불안하고 막막한 20대의 처절한 외침인 동시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이 굳이 몇 년 지난 이 노래를 택한 것은
힘든 시절을 보낸 뒤 톱스타가 되어 다시 부르는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더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먼저 슈가(+V)와 RM 의 랩 가사를 살펴보자 

 

 

같은 날, 같은 달

24/7 매번 반복되는 매 순간

어중간한 내 삶

20대의 백수는 내일이 두려워 참

웃기지 어릴 땐 뭐든 가능할거라 믿었었는데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게 빠듯하단 걸 느꼈을 때

내내 기분은 컨트롤 비트, 계속해서 다운되네

매일매일이 Ctrl+C, Ctrl+V 반복되네

갈 길은 먼데 왜 난 제자리니

답답해 소리쳐도 허공의 메아리

내일은 오늘보다는 뭔가 다르길

난 애원할 뿐야

우리가 그토록 기다린 내일도 어느새 눈을 떠보면 어제의 이름이 돼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어제가 되어 내 등 뒤에 서있네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 그렇게 살아내다가 언젠간 사라지는 것

멍 때리다간 너, 쓸려가 if you ain't no got the guts, trust 

어차피 다 어제가 되고 말 텐데 하루하루가 뭔 의미겠어

행복해지고, 독해지고 싶었는데 왜 자꾸 약해지기만 하지 계속

나 어디로 가, 여기로 가고 저기로 가도 난 항상 여기로 와

그래 흘러가긴 하겠지 어디론가, 끝이 있긴 할까 이 미로가

 

수많은 단어들이 쏟아져 어지럽다. 

단순히 속도가 빠른 랩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어지러운 건 결국 마음.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이 똑같이 흘러간다. 꼭 어제와 오늘을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다.
어릴 때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나 어중간했지만 그래도 미래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전히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단 ‘대학가면’, ‘취직하면’ 뭐든 될 거 라던 어른들의 말을 믿은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갈 길은 먼데 제자리를 맴도는 내가 답답해 소리쳐봐도 들려오는 것은 메아리뿐. 결국 할 수 있는 건 혼잣말뿐이다. 내일이 오늘보다는 낫겠지. 그렇겠지. 공허한 믿음.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된다. 멍 때리다 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도 어제가 되어 떠나버린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나보다 빠르다. 
삶은 그저 주어진 것이니 ‘살아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매 순간 힘겹게 ‘살아내야’ 한다. 어차피 다 떠나가버릴 세월인데 굳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야만 하는 건가, 의미가 있는 건가 싶다. 나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러기 위해선 독해 져야 한다. 쉽지 않다. 원하는 것이 생길수록 약해지기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오늘 안에 갇혀 있다. 이 시간의, 삶의 흐름에 끝이 있긴 할까. 에라이 그냥 될 대로 되라, 어디론가 흘러가긴 하겠지. 이런 마음까지 든다.

 

 

 


 

주목해 볼 것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어제가 되어 내 등 뒤에 서있다고,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단순한 명제가 진리가 되기도 한다. 
어제가 지나 오늘이 되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弃我去者 날 버리고 가는 자,

昨日之日不可留 붙잡지 못하는 어제라는 날들 

乱我心者 날 괴롭히는자,

今日之日多烦忧 번뇌와 근심으로 가득한 오늘이라는 날들

长风万里送秋雁 긴 바람은 만리로 가을 기러기를 보내니

对此可以酣高楼 그를 보며 높은 누각에서 술잔을 기울일 만 하다 

蓬莱文章建安骨  교서랑의 문장은 건안의 풍골이고

中间小谢又清发  중간의 사조도 청신하고 산뜻하구나

俱怀逸兴壮思飞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흥취에 시상이 하늘을 나니

欲上青天览明月  푸른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을 잡으려 하는 구나

抽刀断水水更流  칼을 뽑아 물을 끊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举杯消愁愁更愁  술잔 들어 근심을 씻어내도 근심은 다시 생기니

人生在世不称意  인생을 살아가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明朝散发弄扁舟  내일 아침 머리를 풀어 헤치고 조각배 저어 떠나리라


이는 이백의 시 <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선주의 사조루에서 교서 이운 숙부를 전별하다)>이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기 전 이백이 선주(지금의 안휘성 선성현)에 머물 당시 집안의 숙부인 교서랑 이운(李雲)을 떠나 보내며 지은 송별시이다. 집안의 숙부 이운을 떠나보내며 섭섭한 마음과 장안에서 벗어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근심에 속박되는 것은 이백의 스타일이 아니다. 특유의 ‘쿨’함 역시 시 전편에 드러나고 있다. 

 

 

 

어제라는 날들은 붙잡지도 못하게 날 떠나버리고, 오늘이라는 날들은 번뇌와 근심으로 날 괴롭힌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가며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칼을 뽑아 물을 끊어낸다 한들 물은 흐르듯이, 근심을 씻어내 보려 한들 근심은 다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그저 높은 누각에 올라 술을 마시고, 내일 아침에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조각배나 타러가야 겠다. 
하지만 이는 YOLO의 변질인 ‘한탕주의’라던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믿음의 원천은 스스로의 재능. 
오늘 떠나 보내야 하는 교서랑의 문장은 건안의 풍골(조조, 조비, 조식 등의 시문에서 비롯되어 풍격이 강건하며 맑고 산뜻한 문체를 뜻함)이고, 스스로의 문장은 동경해 마지않던 사조(謝朓)에 비견할 만 하다. 두 사람의 뛰어난 재능을 맘껏 펼치면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이 나라는 재목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에는 언젠가 다 쓰임이 있을 것이니, 그래, 세상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재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 지금은 자유롭게 유랑하며 그렇게 살겠다.

 

 

이백은 당대 가장 유명한 시인이다. ‘이태백’으로 조금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이백은 후대에 이르러 시선(詩仙)이라 불리곤 한다. 시를 짓는 재주가 인간의 것을 뛰어넘어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백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쉬운 언어에 깊은 뜻과 호방(豪放)한 기운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어제’, ‘오늘’, ‘버린다’, ‘떠난다’, ‘칼’, ‘물’, ‘술’과 같은 쉬운 단어들이 시인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어려운 문장이 곧 품격은 아님을 증명한다.

 

 

 

다시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돌아가보자. 
앞 부분에서는 흘러가는 시간과 같은 자리를 답보하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과 막막함을 노래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진짜 하고픈 말은 뒷부분에 있다.

 

 

Tomorrow, 계속 걸어 멈추기엔 우린 아직 너무 어려

Tomorrow, 문을 열어 닫기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여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도 있듯이, 알아서

내일이 오면 밝은 빛이 비추니, 걱정은 하지 말아줘

이건 정지가 아닌 니 삶을 쉬어가는 잠시 동안의 일시 정지

엄지를 올리며 니 자신을 재생해 모두 보란 듯이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우니까

먼 훗날에 넌 지금의 널 절대로 잊지 마

지금 니가 어디 서 있든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포기하지 마, 알잖아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있다고, 
지금 멈춰 있다고 느껴진다면 정지가 아니라 잠시동안의 일시정지일 뿐이라고
그러니 먼 훗날의 너는 반드시 빛날 거고, 그 때 지금의 널 잊지 말라고
어려운 단어는 없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두통이 동반되는 일이다.  

 

도처에 널린 쾌락만큼 복잡하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들도 많다. 

번잡스럽고 번뇌로 가득한 오늘이 그저 지나가버렸으면 한다. 
그럼에도 오늘이 어제가 되어 떠나버리면 아쉽다. 시간만 흐르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일이 있다. 
그 내일은 어제와 오늘이 지나 탄생하는 것이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 처럼 
가장 밝은 내일을 위해서는 가장 어두운 어제와 오늘을 보내야 한다.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 내고 있는 삶을 사는 당신이라면
시간은 그저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 뒤 떠나 보낸 시간은 자원이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당신에게는 그 시간이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괜찮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글=해동주말 이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