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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정상에 서 한눈으로 뭇 산 굽어 보리라.

 

荡胸生曾云, 决眦入归鸟。
dàng xiōng shēng céng yún , jué zì rù guī niǎo 。
会当凌绝顶, 一览众山小。
huì dāng líng jué dǐng , yī lǎn zhòng shān xiǎo 。” 

 

 

 

깊은 계곡 층층 구름이 솟고 
저 멀리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반드시 저 산 정상에 올라
한눈에 뭇 산 굽어 보리라. 

 

 

 

뭇 산이 서로 높다고 뽐낸다. 아래서 보기에 참 감탄스럽기만 하다. 산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리 높고 의연하지만 한 지….
그런데 태산이 높다 하되 결국은 하늘 아래 뫼다.
저 구름을 뚫고 날아올라 온 새의 시각으로 보면, 산들은 작기만 하다. 
어찌나 작은 지 다 보는 데 한눈이면 족할 뿐이다. 한눈에 다 들어오고 남는다.

 

 

 

​“내 그렇게 날아 올라 보리라. 
반드시 단숨에 정상 높은 곳에서 한눈에 뭇 산을 굽어 보리라.” 

 

 

 

시에 넘치는 호연지기浩然之气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이제 시성诗圣이라 불리는 두보杜甫712~770다. 
시는 '태산을 바라보다'望岳이다. 
두보가 736년 24살 때 과거에 낙방한 뒤 산둥성을 여행하다 지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두보의 시 가운데 가장 젊은 시절 지은 시다.
자는 자미이고, 할아버지 두심언杜审言은 초당 문장사우 가운데 한 명이었다. 뿌리 깊은 문인, 사대부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두보에 이르러 집안은 이미 기울어 두보는 평생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야 했다. 
더욱이 살았던 시기도 좋지 않았다. 두보는 30대까지 당이 가장 번영했던 시기를 살았고, 이후 평생을 국운이 기우는 시기를 겪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지만 말년 고생은 돈을 주고 피하라"하는 데, 두보는 그 반대로 살았던 셈이다. 

 

 


 

 

 

당 시인들의 교분이 남달랐듯, 두보 역시 당대 이백李白 등과 사귀었다. 이백과 두보는 한시의 양대 태두다.
이백을 시선诗仙이라고 두보를 시성이라고 칭한다.
흔히 두보의 시를 동양 휴머니즘이 대표적인 시라며 이백의 앞에 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백의 시가 화려한 묘사로 독자를 매료시켰다고 한다면, 두보의 시는 너무 인간적이어서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백의 팬으로서 좀 공감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분명한 점은 이백은 이백대로, 두보는 두보대로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시는 처음 태산이 어떠냐고 자문하며 시작한다. 

 

 

 

​“岱宗夫如何?
dài zōng fū rú hé” 

 

 

 

岱山은 산둥山东성 태산泰山이다. 공자가 산을 올라 천하가 작은 것을 알았다는 산이다.
주봉이 해발 1524m로 실제 아주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변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평야다. 자연히 태산은 더 높아 보일 수밖에 없다. 산정에서 보면 천하가 공자 말처럼 작아 보인다.
시인은 그 산의 웅장함을 신의 걸작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造化钟神秀 
zào huà zhōng shén xiù” 

 

 

산세의 빼어남은 신의 조화 

 

그리고 이어지는 게 소개한 구절이다. 정말 무릎을 치게 하는 표현이 다음 구절이다.

 

​“决眦入归鸟”  

 

 

决眦는 가늘에 뜬 눈, 시각이라는 뜻이다. 멀리 보기 위에 눈에 힘을 줘 그리된 것이다. 
이 구절은 시인과 새의 교감을 보여준다. 이 구절을 통해 시인은 저 멀리 새를 보고, 새의 눈으로 다시 태산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것이 다음의 천하 명구다.

 

 

​“一览众山小”  

 

 

 

시를 다시 읽어볼수록 기개가 새롭게 느껴진다. 높은 산에 올라 일출의 기운을 받는 기분이랄까?
시를 읽으며 "会当凌绝顶"의 会当을 刹那로 바꿔면 색다른 맛이 있다 싶다. 
会当은 반드시 하겠다는 의미이고, 刹那chànà 순간이라는 의미다. 
즉 会当이 붙어서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가 되지만, 刹那가 붙으면 순간 그렇게 됐다는 의미가 된다. 

 

 

​“刹那凌绝顶, 一览众山小”  

 

 

순간 저 산 정상에 올라
굽어본 뭇 산이 작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