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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다시 떠올려 보는 꿈; 문문 <비행운> X 맹호연 <세모귀남산(한 해의 끝 무렵 남산으로 돌아가며)>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의 끝무렵이면 역설적이게도 처음을 회상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가졌던 희망꿈 같은 것들도 함께 떠오른다
 
꿈이라는 단어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울적한 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에 꿈을 이룬 사람보다 이루지 못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일까.
 
어릴 적에는 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축구 선수연예인대통령우주 비행사까지
하늘의 별처럼 높은 곳에 올라 빛을 발하는 어른이 되리라 결심하곤 했다
 
그리고 자라나면서 조금씩 실감하게 됐다.
내가 바라던 높은 곳과 내가 위치한 곳 사이의 거리를
꿈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온도의 차이를 느끼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꿈도어른이란 것도그리고 ''도 사실 별 것 아닌 시시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자라난 시시한 어른들의 마음을 울리며 주목받은 노래가 있다 

 

 


 

문문의 비행운이다
아이유정국 등 셀럽들의 추천도 있었지만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은 건 무언가 체념한 듯한 목소리와 울적한 가사이다.

먼저 영상과 가사를 보자 

 

 

(붉은색 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매일매일이 잿빛이더라구
팽이돌듯이 빙빙 돌더라구
어른이라는 따분한 벌레들이
야금야금 꿈을 좀 먹더라구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뿔이 자라난 어른이 될테니
억지로 라도 웃어야지 하는데
그럼에도 좀 울적하더라구

어제와 오늘의 온도가 너무 달라서
비행운이 만들어졌네
내가 머물기에 여기는 너무 높아서
한숨자국만 깊게 드러났네

꼬마가 간직했던 꿈은 무엇일까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봤네
1996년 7월 20일에
우주 비행사라고 적어 놨네

들려오는 것은 두 대의 기타 소리와 한 명의 목소리. 멜로디를 들어보면 단조(minor key)가 지배적이다. 나즈막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처연하다 못해 염세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1996 7 20일 우주 비행사를 꿈꾸던 꼬마는 
자라나 겨우’ 자신이 된다.
소년이 자라나는 과정은 분명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꿈꾸던 소년에게 어른들은 벌레’, ‘뿔이 자라난 괴물로 보였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니뿔이 자라난 어른과 지금 자신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은 쳇바퀴 돌 듯 빙빙 돌아가고 매일매일은 잿빛이다
실은 지금이 힘들어서가 아니다꿈꿔왔던 모습과 현실의 괴리그 괴리가 곧 절망이 된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더라면그랬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울적하다 

 

그런데 이런 쓸쓸하고 우울한 노래가 비단 21세기 청년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면?
1500년 전 한 사람이 쓴 시를 읽어 보면 그의 감정이 지금 사람들의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北闕休上書 조정에 글 올일 일 없어
南山歸敝廬 남산 낡은 집에 돌아왔네
不才明主棄 재주가 없어 현명하신 임금님이 버리고
多病故人疏 병이 많아 친구들과 왕래도 드무네
白發催年老 흰 머리칼은 나이를 재촉하고
靑陽逼歲除 따뜻한 봄볕 가는 해 다그치다
永懷愁不寐 끝없는 시름으로 잠 못 이루고
松月夜窗墟 소나무 사이 달빛이 비친 창 공허하기만 하네

이 시는 맹호연(孟浩然)의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 한 해의 끝 무렵 남산으로 돌아가며)’이다.
 
맹호연은 다른 자연파 시인과 달리 조정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자리를 얻지못해 부득이하게 자연과 함께하게 된 케이스이다. 당시 대 문호였던 왕유(王維)나 장구령(張九齡) 등과 친분이 있어 이름은 알려졌으나 좋은 벼슬은 하지 못했다. 
 
이 시는 맹호연이 4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장안(당나라의 수도)에 올라가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자 실의에 차 고향에 은거하겠다고 결심하며 지은 시이다. 이 시에서는 그의 실망이 잘 드러난다.

 

그는 여태껏 열심히 조정에 글을 올려왔다언젠가는 내 재능을 알아주겠지그렇게 믿어왔건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 이라고는 남산의 낡은 집에 돌아오는 것뿐이다
재주가 없어(不才)’라는 대목에서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가, ‘현명하신 임금(明主)’이라는 대목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몰라주는 임금에 대한 투정이 느껴진다자신의 재능노력을 몰라주는 임금이세상이 밉다
그간 글을 쓴답시고 친구들과도 소원해졌고친구들 마저도 자신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다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간다흰머리가 한가닥씩 늘어나고 봄볕은 세모(세밑), 즉 한해의 끝자락을 다그친다
잠이라도 청해보려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다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시름이 된다끊임 없는 악순환이다
창밖을 내다 보니 소나무 사이로 달빛이 비쳐 공허한 모습이다실은 창밖 풍경이 공허한 것이 아니다세상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니 풍경도 괜스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마지막 글자인 墟(공허함)에서 출발하여 이 시를 완성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이 한 글자가 시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사람이 그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을 때 결국 남는 건 공허함뿐이다최선을 다했건그러지 않았건 타의에 의한 포기가 속 시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 아픈 이야기가 남아있다왕유와 맹호연이 함께 있을 때 군주인 당(현종이 맹호연에게 자작시를 외워 보라 하였고 맹호연은 이 시를 읊었다현종에게는 不才明主棄(재주가 없어 현명하신 임금님이 버리고)’라는 대목이 자신을 비꼬는 것으로 느껴졌다이후 맹호연은 당 현종의 미움을 사 끝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병에 걸려 일생을 마감한다
 
맹호연은 산수와 함께하며 맑고곱고 기품 높은 시를 남겼다. ‘시선(詩仙)’이라 불렸던 이백(李白)이 증맹호연(맹호연에게 보내다)’라는 시에서 나는 맹호연을 좋아해라는 구절을 남길만큼 청아한 인품과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전해진다 

 

누군가는 이 시에 대해 루저의 변명이라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과 현실의 온도 차를 느껴본 사람만큼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이동경 

참고자료